죽음을 들여다보며 삶을 이해하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법의학자 이호 교수는 이 말을 몸소 실천해온 사람이다. 4,000건이 넘는 부검을 해오며 그는 단지 시신을 해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통찰하고,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증인이 되어왔다. 그가 부검한 것은 육체만이 아니라, 그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와 억울함, 사회적 단절이었다.
이호 교수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죽음을 단지 ‘끝’으로만 여긴다면, 그 안에 숨겨진 많은 경고를 놓치게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각종 대형 참사—세월호, 무안 공항 참사, 이해람 중사 사건 등—을 통해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이 죽음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검이 말해주는 사회의 병리
법의학자의 부검은 단순한 사망 원인 분석을 넘어선다. 이호 교수는 시신을 분석하기 전에 해당 인물의 마지막 행적, 가족 관계, 통화 내역, 심지어 목격자 진술까지 확인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검은 그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보는 작업입니다. 단순히 죽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결을 파악하는 일이죠."
그는 특히 범죄 피해자 가족들이 받는 심리적 상처에 주목했다. 현재 범죄 피해자 본인에 대한 지원 제도는 존재하지만, 그 가족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호 교수는 이를 "우리 사회가 가장 취약한 지점을 외면하는 방식"이라 표현한다.
그는 한 어린이의 죽음을 예로 들며 부모들이 겪는 자책과 트라우마,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 어떻게 이차 피해를 유발하는지를 설명했다. 결국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할 가장 근본적인 거울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죽음을 통해 되묻는 삶의 자세
이호 교수는 우리가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고, 금기시하며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죽음’에 대한 대화 자체를 꺼려하며, 노화나 말기 질환, 죽음 준비 교육 같은 분야에 소홀하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죽음은 그림자처럼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동안의 삶이 즐거웠다면 충분한 것 아닐까요?”
그가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나로 인해 누군가 즐거웠다면, 그게 제 삶의 의미입니다." 그는 이러한 철학으로 법의학을 수행해왔고, 한 사람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용히 증언해왔다.
그는 특히 무한 공항 참사에서 보여준 조종사의 마지막 손짓, 세월호 희생자들의 구명조끼를 입은 모습 등에서 극적인 장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시해온 경고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말한다. “이건 한 사람의 실수로 생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무시해온 허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참사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부검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죽음들, 그 주변의 눈물, 자책, 분노, 침묵. 이호 교수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간과한 작은 균열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움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 그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작점이라는 이호 교수의 메시지. 우리는 그 말을 통해, 이제는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